팬덤 정치

전 한국의 정치를 참 좋아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신문을 접하면서 정치에 관심 아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성인이 되고 군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한 뒤 정치관련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참여정부 시대였는데, 뭐랄까? 당시 대통령이 위트가 넘치는 것도 있었지만, 국회의원들의 모습이나 각 지방자치 의원들의 모습 등등 적지 않은 모습들이 저에게로 하여금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했었습니다.

그렇게 정치 관련 블로그를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운이 좋게 몇 번의 블로그 랭크에도 올라서 보고 몇몇 언론에 글도 송고해 보고 하면서 용돈벌이 정도는 했었습니다. 뭐 제가 정치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블로그에서 떠들어만 되는 일개 한 명의 국민이지만 정치 관련 글을 쓸 때만큼은 참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정치는 저에게 신물 나는 존재로 변해갔습니다.

그 계기는 뭐랄까? 단순히 정치 이념으로 나누어진 모습에서 벗어나 뭐 이도 저도 아닌 팬클럽(이하 팬덤) 같은 집단들이 등장하면서 이건 뭐 정치를 하기 위한 사람인지 아니면 아이돌처럼 그들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변모를 해 버렸다는 점에서 신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문제는 같은 이념을 가진 정당의 정치인들이라도 성향이 다르면 괜히 서로 헐뜯게 되고 한 나라의 중요한 정책이나 인물을 뽑는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팬덤이 없는 정치인은 아무리 정치를 잘해도 속칭 뒷방노인이 되고, 팬덤의 규모가 큰 정치인의 경우는 정치를 못 해도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인이 된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나 규모가 큰 팬덤을 가진 정치인의 경우 여론몰이도 쉽게 할 수 있어 법안을 상정하거나 같은 정당이나 다른 정당의 정치인과 대립 관계가 만들어져도 여론을 움직여 우위에 서게 되는 모습을 종종 보면서 정치가 왜 이런 모습으로 변화했을까 우려 아닌 우려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 아니면 모‘라는 식의 정치 구도가 만들어졌고 보수는 보수대로 욕을 먹고 진보는 진보대로 욕을 먹으며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중도들도 뭐 이도 저도 아닌 사람으로 욕을 먹는 이상한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그 팬덤에서 또 다른 정치인이 등장을 하고, 또 다른 팬덤이 생기고 또 거기서 정치인 아니 국회의원들이 등장을 하면서 정치를 하고 싶으면 힘 있는 국회의원의 팬덤이 되고 그 안에서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공식이 만들어지면서 정말이지 이도 저도 아닌 정치판이 되어버려 신물이 나 버렸던 겁니다.

제가 정치에 관심을 끊은 것은 대략 4, 5년 정도 되어갑니다. 정치 뉴스를 본다고 해도 제목만 보거나 좀 큰 사건이 일어나야 기사를 읽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정치가 이 지경이 되다 보니 뉴스를 보지 않아도 정치판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뻔히 예상되었고, 또 그 예상이 맞아떨어지면서 정치판을 뒤흔들 수 있는 국회의원이나 정치 9단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옛말을 답습하는지 계속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수나 진보나 다를 게 없습니다.

저의 고지식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한 나라의 대표 정당의 대표나 대통령 같은 인물은 최소한 정치 9단 정도의 역량은 갖추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지난 십수 년간 그런 인물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런 인물이 등장해도 정당 구조상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구조였습니다. 정치를 조금이라도 잘하면 기성 정치인들이 견제하거나 공천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눌러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런 정치인일수록 실제로 큰일이 생기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얼굴마담을 내세우고 자신은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려는 데만 집중하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정치에 대한 실망은 더 커졌습니다.

이번 달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6월 초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누가 되었든 등장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아마 어느 팬덤의 영향력이 더 크냐, 누가 더 여론몰이에 능하냐에 따라 결과가 갈릴 것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말이죠.

다른 건 몰라도 확실한 것은 저 같은 경우 다시 뉴스를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왜냐? 요즘 정치판이 참으로 재미있게 흐르고 있습니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이번 달 아주 재미있게 흘러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선 전 경선의 진흙탕 싸움은 상당히 재미있는 구경거리거든요. 본인 정당이 이기기 힘든 것을 뻔히 아는데 주위를 보니 본인 말고는 뭣도 없는 사람들 같아 대선뽕을 맞아보기 위해 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대선뽕을 못 잊어 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나가기만 하면 승리가 확정적이니 일단 유력 후보를 죽이자라는 식으로 달려드는 후보도 있을 테니 얼마나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겠냐 이 뜻입니다.

과연 팬덤 정치는 올해도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어떤 인물들이 등장할지 궁금해집니다.